인터넷 시대인 요즘 다양한 '썰'이 마치 '사실'인양 네트워크의 바다를 떠돌아다닌다.
이에 대해 주류 언론들이 '괴담'이라고 폄하하고 있는데,
사실 이런 풍문 중에는 사실에 가까운 것도 있고, 사실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도 있다.
모두 괴담이 아니라 일부가 괴담이라는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괴담인지 네티즌들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먼저 '광우병 괴담'의 경우.

처음에는 분명 '괴담'의 요소가 많았다.
미국 소가 들어오면 다 뇌에 구멍이 숭숭 뚫려 죽는다는 식의 확률을 무시한 발언들이 횡행했고,
'인간광우병'이라 불리는 변종 CJD가 아닌 산발성 CJD도 다 광우병 때문인 것처럼 회자됐다.

하지만 지금은 이명박 정부 덕분(?)에 국민들이 광우병에 대해 전문가 못지 않은 지식을 갖게 됐다.
한국 소라고 해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프리온 단백질이 뭔지도 알고,
그게 소의 어떤 부위에 많이 있는지까지 잘 안다.
또 확률은 낮지만 그 확률이 0이 아니고, 일단 걸렸다 하면 치료법 없이 죽는 병이기 때문에
단순히 확률 문제로 처리할 수 없다는 논리도 설파할 수 있게 됐다.

확률은 자동차 사고로 죽을 확률이 훠얼씬 높다 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이 통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훨씬 적은 공포를 지니는 법이다.
로또 당첨 확률이 극히 낮지만 어쨌든 매주 로또 당첨자가 나오는 걸 보면
4000만 국민 중 한두 명은 10년 뒤쯤 발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특히 그동안 인간광우병 환자들을 보면 대부분이 20대 이전에 먹은 쇠고기로 인해 나중에 발병했는데, 이는 나보다 내 자식들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처음에는 괴담이 횡행했더라도 지금은 괴담이라고 치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광우병 괴담 때문이 아니라 광우병의 진실을 알고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데 대우조선 괴담(이런 표현을 쓴 주류 언론은 아직 없지만 그건 광우병에 비해 그만큼 논란이 안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은 진짜 '괴담'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대우조선 괴담의 내용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산업은행이 매물로 내놓은 대우조선의 매각주간사 우선협상대상자로 4월 21일 골드만 삭스가 선정됐다. 골드만 삭스가 업계 관행에 비해 매우 낮은 덤핑 수준의 수수료율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골드만 삭스는 외국계 투자은행이고 중국 조선소의 지분을 갖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따라서 골드만 삭스는 중국 조선소에 한국 조선소를 팔아 먹을 것이다. 또 대우조선 실사과정에서 "세계 최고의 한국 조선 기술과 잠수함 기술"을 획득해 중국 조선소에 전수해 줄 것이다.

게다가 산업은행이 골드만 삭스를 자문사로 선정한 것은 골드만 삭스 계열사인 한국 골드만 삭스 자산운용의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조카이자 이상득 의원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명박은 한국의 조선회사를 중국에 팔아먹으려는 매국노이다.

이런 괴담을 만들어 유포시킨 주체는 대우조선 노조이다. 어떤 곳에든 매각되면 구조조정 등이 불가피한 만큼, 매각을 지연시키고 매각 과정에서 고용보장 등을 받아내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물론 그 요구는 노조로서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괴담은 처음 들었을 때부터 너무 엉터리라 어이가 없었는데, 인터넷에서 너무나 빨리 확산되는 걸 보고 황당하기까지 했다.

대우조선이 중국 조선소에 넘어간다는 음모론은 너무나 터무니없다.

(1) 현재 대우조선을 인수하겠다는 한국 기업이 무쟈게 많다 : 포스코, 두산, 한화, GS 등 모두 국내 쟁쟁한 돈 많은 재벌 기업들이다. 한화처럼 돈이 달리는 데는 자산 매각까지 하며 실탄 준비를 하고 있고, 벌써 두산 등은 (매각자문사 결정 전에) 인수자문사 계약까지 맺었다.

(2) 골드만 삭스는 중국 조선소의 경영권을 갖고 있지 않다 : 골드만 삭스가 중국 조선소 2곳에 투자했는데 하나는 지분이 극히 적은 소액주주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자본 투자를 했으나 역시 경영권은 없다. 한국 회사를 인수해라 말아라 할 권리가 없다.

(3) 중국 조선소는 한국 조선소를 인수할 만큼 큰 회사가 아니다 : 어느 정도 규모가 돼야지 최소 5조~최대 10조원 가치로 평가되는 대우조선을 인수할 수가 있다. 중국 조선소로서는 택도 없는 금액이다. 반면 한국의 인수의향 기업들은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다.

(4) 매각 주체는 골드만 삭스가 아니라 산은이다 : 산업은행과 캠코(자산관리공사), 즉 정부가 대우조선의 대주주이다. 골드만 삭스는 매각 주간사로서 여러 인수 업체와 접촉해 매각 단가를 올리는 등의 역할을 하는 곳이지, 대우조선을 직접 파는 주체가 아니다. 산은이 국민들이 눈 부릅뜨고 있는데 중국 조선소에 대우조선을 팔아넘긴다고?

이상득 의원 아들이 골드만삭스 자산운용의 사장이라 특혜가 돌아갔다? 그렇다면 매각주간사에 원서를 냈던 나머지 14개 회사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매우 싼 수수료율을 제안했고(국내 증권사들은 매각 주간사를 했던 경험도 거의 없으면서 훨씬 비싼 수수료율을 제시했다) 골드만삭스의 M&A 주간 능력은 이미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왜 자본시장통합법을 정부가 발표하면서 "한국의 골드만삭스를 육성하겠다"고 했겠는가? "투자은행(IB) 하면 골드만삭스"할 정도로 높이 평가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브프라임 부실 문제가 터졌을 때도 골드만삭스는 위험 자산을 빨리 처분해 위기를 모면했지만 씨티그룹 메릴린치 베어스턴스 등은 올해 초 폭탄을 맞았다. 그만큼 회사 내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잘 돼 있다는 뜻이다.

기술 유출 가능성에 대한 의혹은 중국에 대우조선을 매각한다는 황당한 가설에 비하면 그나마 좀 그럴 듯한 음모론이다. 실사 과정에서 얻은 기술을 중국 조선업체에 흘려 골드만 삭스가 투자한 중국 조선업체의 가치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조금이라도 알려질 경우 앞으로 골드만 삭스가 국제 시장에서 자문사 딜을 따올 수 있을까? 한국 내 사업은 어떨까? 앞으로 한국에서 자문사는 절대 못하게 될 텐데? 그런 위험을 감수한다고?

어쨌거나 결국 산업은행은 여론에 굴복해 골드만삭스에게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요구했고, 이것을 다른 투자은행에도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결국 산은이 직접 매각 자문사 역할을 하기로 했다. 최선은 아니어도 차악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허무맹랑한 괴담 때문에 딜 자체가 진행이 안 되는 상황은 막았으니까. 하지만 결국 인터넷 괴담이 승리하는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이런 괴담을 유포하는 전략을 쓰는 세력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에 답답하다.
Posted by 펄
◀ PREV : [1] : ... [64] : [65] : [66] : [67] : [68] : [69] : [70] : [71] : [72] : ... [179] : NEXT ▶

BLOG main image
펄의 삶 생각 느낌들을 적는 공간입니다. http://blog.naver.com/pariscom에서 보금자리를 옮겼습니다. 이메일은 pariscom@gmail.com입니다. by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79)
미디어이야기 (28)
한국이야기 (61)
세계이야기 (16)
게임이야기 (7)
영화/음악/책 (7)
가족이야기 (4)
내 이야기 (24)
경제이야기 (21)
IT이야기 (10)

글 보관함

달력

«   2008/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tatistics Graph
Total : 215321
Today : 551 Yesterday : 1025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