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게리온:파

영화관에 혼자 가서 보는 일..
남에게는 종종 있는 일일지 몰라도 나에겐 이번이 처음있는 일이었다.
12월 8일 밤 10시 CGV 대학로 8관.
관객은 겨우 열명 정도?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나 포함 세명이었다.

몇 가지 느낀 점을 말하자면.. (스포는 없으니 안심하고 읽으셔도 됩니다)

1. 매우 대중적이다. 내용도, 캐릭터도 TV판-옛 극장판으로 이어진 것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웅장한 화면 연출도 대단.

2.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흡입력이 강하다. 각본과 연출의 승리.

<파>에 대한 사람들의 평이 칭찬 일색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옛날 것이 더 좋다.

TV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번 정도 봤고(더 본 것 같은데 확실히 모르겠다) 극장판, 특히 마지막 편은 정말 수도 없이 봤던 나로서는(극장판은 쿡TV에서 무료로 백번도 볼 수 있다!) 이번 신 극장판은 옛 에반게리온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슴이 덜 아프기 때문이랄까.

지금 세대들이 보면 마냥 찌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신지의 아픔도 이해가 됐고, 아스카와 레이도 가슴에 사무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극장판에 나오는 아이들은 (물론 아스카는 더 불쌍해졌지만) TV판 26화에 잠깐 나왔던 것처럼 맑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싫어했던 26화를 나는 너무 좋아했던 것은, 사람들의 기대를 완전히 배반하는 작가의 담대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본 건.. 미국식 블록버스터에다 오덕의 껍데기를 입힌 것뿐이라는 느낌이 든다. 트위터에서 '난 오덕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는데 많은 분들이 반박하셨지만 난 에바의 삐딱함, 줄거리는 물론 하다못해 메카닉 디자인에서까지 삐딱함을 추구했던 데 감명을 받아 에바를 사랑했던 것일 뿐이다.

이번 편에 특히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소녀들에 대한 관음적 시선이다.
TV판에서도 차회 예고에 등장한 '서비스 서비스'는 많은 에바 팬들이 추억처럼 여기고 좋아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너무나 싫었다. 다음 회에도 여자 주인공들 노출신이 있으니 기대하라, 이런 걸 좋아할 수 있나.

TV판 때는 워낙 에바가 흥행이 안 되고 그래서 변명의 여지라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주인공들의 노출신도 생경하지 않고 맥락에 자연스럽게 이어졌기 때문에 보는 동안에는 특별히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한 장면 그려서 2~3분 때운 엘리베이터 장면도 (제작비 절감 차원이었겠지만) 사실 충분히 이해 가능한 맥락에서 그려졌다.

하지만 <파>는 다르다. 이건 충분히 흥행 가능한 작품이다. 수많은 팬들도 있다. 굳이 미성년 소녀들의 팬티를 능글맞게 훑으며 보여줘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게다가 내용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장면들도 아니어서 그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생경하다. 미소녀 오덕들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 이런 장면을 넣었다면, 안노는 TV판이나 옛 극장판을 만들었을 때의 안노가 아니다.

물론 사람은 변하는 것이고, 안노도 조금은 인생을 덜 비관적으로, 희망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부인이 그런 점에서 좋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다. 그런 점은 좋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이런 저런 이유들로 인해 나는 <파>를 100% 즐길 수 없었고, 안노 감독에 대한 팬심도 크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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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1 18:16 2009/12/1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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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반게리온 : 파,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Tracked from 대마왕 이야기 2009/12/14 15:07 Delete

    에반게리온 : 파 (ヱヴァンゲリヲン新劇場版:破, 2009) 14년 전의 신지와 레이를 기억하는 나로서는 조금 더 서로를 알아가고&nbsp;같이 웃을 수 있게 앞으로 나가는 그들의 모습이 감동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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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까막 2009/12/14 13:49 # M/D Reply Permalink

    하지만, 왠지 마지막에서 관객들을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쿨럭;

    거부감을 느끼신 맥락은 그렇게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번쩍 들면서, 뭔가 반성하게 만드는 면이 있군요. orz

  2. 구독자 2009/12/14 16:00 # M/D Reply Permalink

    사실 노출신, 서비스샷 등은 에반게리온 제작사인 가이낙스의 주된 전략, 세일링 포인트이자 정체성의 일부죠..
    가이낙스 초창기 진지하고 얌전했던 명작 왕립우주군의 뼈아픈 흥행 참패와 에로틱한 서비스샷이 끊이지 않는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의 대성공 이 후, 이러한 노출은 가이낙스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진지한 작품성, 집요한 퀄리티와 더불어 '서비스신'이나 노출은 에반게리온의 성공 뿐만 아니라 가이낙스 성공에 큰 요인입니다...

    저도 싫지만 좋아하는 부분이네요 -_-

    아무튼 90년대 이후, 가이낙스의 성공과 '모에' 애니메이션의 주류화는 같은 흐름이고... 에반게리온과 가이낙스는 오히려 '모에' 열풍의 주범이라고까지 할 수 있으니.. 가이낙스의 변화가 에반게리온에 반영된 것이라 봐야할까요.

  3. 비밀방문자 2009/12/14 15:04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4. 댕글댕글파파 2009/12/14 16:04 # M/D Reply Permalink

    제 생일때 보셨군요 :)
    에반게리온을 좋아는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은 없었는데 QOOK으로 극장판이라도 봐야겠네요^^

  5. AKI 2009/12/15 00:32 # M/D Reply Permalink

    전 평소 노출신은 정말 안좋아하는 타입이어서인지, 글쓴 분의 의견이 많이 공감되네요. 미성년들의(혹은 성녀들의) 몸매가 드러나는 카메라 워크, 일부 신체 부위 노출 등은 확실히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플러그 슈트나 필연적인 누드 연출만 하더라도 나름대로 매력적인 부분이 있는데, 이제는 저런건 없애도 충분히 멋진 에반게리온일 것 같은데.. 그래도 여전히 노출신이 없으면 안된단 분들도 많은듯 하니 제 생각은 좀 대중(?)에서 빗나간 것 같기도 합니다...

  6. 비밀방문자 2009/12/15 20:28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7. 써머즈 2009/12/21 12:45 # M/D Reply Permalink

    마치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들 (H2, 터치, 러프 등등)에서 극의 전개와 전혀 관계없이 수영복 장면이 나오거나 바람이 불어 치마가 뒤집어지는 장면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죠? ;;;

  8. NooGie 2009/12/25 12:34 # M/D Reply Permalink

    종종 있는 일을 하는 그 남..1人
    이 바로 접니다~^^

    전 처음엔 어색했는데, 나중에는 슬슬 즐기게 되더라구요~
    옆에 앉은 사람도 없이, 혼자서 몸을 의자에 깊게 파묻고..
    팝콘과 콜라를 홀짝거리며 보고 있으면..
    집에서 혼자서 엄청난 크기의 TV로 영화를 보는것처럼..
    집중도 잘되고, 주변 신경 안써도 되니 편하고 하더라구요~

    뭐 가끔 나오다가 어깨를 툭 부딪히는 커플들을 보면..
    '저런 XX'라고 속으로 외치긴 하지만 말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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