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금융의 제왕(Lords of Finance)

우리회사에서 발간하는 경제잡지 <포춘>에 매월 경제.경영 서적 리뷰를 쓰고 있다.
그중 내가 참 재밌게 읽었던 책의 리뷰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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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ds of Finance: The Bankers Who Broke the World
리아콰트 아메드 지음/ 조윤정 옮김/ 다른 세상/ 2만8,000원
금융의 제왕
2008년 10월 8일, 미국 유럽 영국 캐나다 스위스 스웨덴 등 6개국 중앙은행은 일제히 기준금리를 0.5%포인트씩 인하했다. 지구 반대편 중국 인민은행도 기준금리인 1년 만기 대출금리를 0.27%포인트 내렸다. 뒤이어 우리나라를 포함한 신흥시장국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대폭 내리며 금리인하 공조에 나섰다.

사상 유례 없는 이 같은 중앙은행들의 공조는 9월 중순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초유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한 달도 안 돼 이뤄진 것이다. 이른바 ‘대공황 2.0’을 막겠다는 중앙은행장들의 의지가 신속한 공조로 발휘된 것이었다. 이후 버냉키는 연준의 기준금리를 제로까지 낮춘 후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대로 미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 매입을 통해 이른바 ‘양적 완화’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반적으로 통화당국, 즉 중앙은행의 제1 목표는 ‘통화가치 수호’다. 물가가 오르면 통화가치는 떨어지고, 발권력을 마구 행사해 돈을 찍어내도 역시 통화가치는 떨어진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통화가치를 수호하려면 버냉키처럼 돈을 찍어내면 안 된다. 그러나 버냉키가 금리를 제로로 낮추고 돈을 헬리콥터에서 뿌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대공황기의 중앙은행들이 그렇게 하지 않아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교훈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대공황 전후 중앙은행들이 실제로 어떤 정책을 썼길래 현재 중앙은행들의 급진적 통화정책이 정당화되는 것일까. 이 책에 그 답이 나와 있다. 저자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부터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 전 대통령이 금본위제를 폐기하고 뉴 딜 정책을 폈던 1933년까지의 시기를 4명의 중앙은행 총재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주인공들은 예민하고 비밀주의로 일관했던 영란은행 총재 몬태규 노먼, 능력과 의지가 있었지만 지나치게 병약했던 벤저민 스트롱, 외국인을 혐오하고 의심이 많았던 프랑스은행 총재 에밀 모로, 재능이 있었지만 오만했던 독일 제국은행 총재 햘마르 샤흐트다. 아마 금융이나 역사에 큰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중 누구도 들어본 적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주연을 능가하는 조연으로 등장하는 관료 출신 학자의 이름은 누구나 들어봤음 직하다. 바로 존 메이너드 케인즈. 그는 이 책에서 중앙은행 총재들이 세계 경제와 금융을 붕괴의 길로 몰고 가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날카로운 분석력과 창의적인 생각으로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그는 단순한 강단 학자가 아니었고 윈스턴 처칠 등에게 경제정책을 제안했으며 심지어 환투기까지 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에는 이후 수십 년 동안 세계 통화정책의 기준이 되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설계한다.

언뜻 생각하기에 정말로 딱딱하고 지루할 것 같은 등장인물들이지만, 실제 책은 600페이지의 두꺼운 책을 언제 다 읽었나 싶을 정도로 재미있게 전개된다. 당시 언론 기사 등을 통해 철저히 사실에 바탕을 두고 썼지만,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은 마치 소설처럼 긴박하고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1차대전 전까지 세계 경제는 번영을 구가했다. 영국 런던의 금융중심가인 시티를 중심으로 세계 경제는 금본위제의 뒷받침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금본위제란 발행 통화를 일정 비율로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과 교환할 수 있도록 통화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중앙은행들은 전비를 대기 위해 돈을 찍어냈다. 전후 통화량은 영국이 두 배, 프랑스는 세 배, 독일은 무려 네 배로 늘어났다. 전쟁이 끝나자 중앙은행 총재들은 그렇게 시중에 풀린 돈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금본위제를 무너뜨릴까봐 걱정했다.

특히 영국의 노먼과 미국의 스트롱은 전후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금본위제로 돌아가기 위해 디플레이션을 선택했다.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의 반대 개념으로 물가가 떨어지는 것을 말하며, 경제가 심각하게 위축되고 실업률이 상승하는 등 경제 주체들에 심각한 고통을 안겨 준다. 그런데도 통화절하가 아닌 디플레이션을 선택한 것은 그때만 해도 중앙은행이 발행한 통화를 평가절하 한다는 것은, 통화당국이 국민의 자산 가치를 낮추는 일종의 사기행위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의 달러화처럼 당시 기축통화나 다름없었던 영국 파운드화가 평가절하를 한다면 세계 금융 시스템을 뒤흔들 것이 분명했다.

영국은 금본위제로 돌아가기 위해 금리를 높여 파운드화 가치를 높게 유지했다. 그러나 프랑스 중앙은행은 영국과 달리 자국 통화 가치를 낮게 유지했다. 이 때문에 노먼의 선택은 영국 경제를 이후 오랫동안 침체에 빠뜨리고 높은 실업률을 유지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각국의 모순된 통화정책은 결국 위기를 잉태했고, 1926년 연준의 금리인하는 심지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했다. 당시 스트롱은 자국 내 주식시장이 버블 징후를 나타내고 있었는데도 금본위제 때문에 곤란에 빠진 영국이 금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돕고자 자국 금리를 인하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신용완화 정책은 주식시장에 날개를 달아줬다. 8월에 연준이 금리를 인하한 후 연말까지 다우지수는 20% 이상 상승했다.

뉴욕 증시의 버블이 심각해지자 미국은 결국 금리를 올렸고, 독일에 흘러 들어가던 자금 흐름이 미국으로 급격히 이동했다. 이 때문에 배상금 등으로 엄청난 빚을 지고 있던 독일에 사실상의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뉴욕 증시의 버블도 꺼졌다. 1929년 주식시장 붕괴는 주식투자 자금을 공급했던 ‘브로커론’을 취급했던 은행들에 큰 손실을 가져왔고, 결국 1931년에는 대형 은행인 유나이티드스테이츠은행가 도산,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일련의 대형 위기가 차례로 발생하면서 대공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29년부터 33년까지 세계 주요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5% 넘게 감소했다. 성인 남성의 4분의 1이 직업을 잃었고, 상품 가격은 반으로 떨어졌다.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집권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금본위제를 폐기하는 것이었고, 이후 세계 경제는 완전히 다른 통화 체제 아래 움직이게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현재 상황이 계속 겹쳐 보인다. 노먼의 시대와 지금은 정보의 속도나 삶의 방식이 너무나 다르다. 당시 중앙은행장들은 가장 급작스런 금융위기가 터져도 기껏해야 전보로 서신을 교환했고 배를 타고 몇 주일이나 걸려 대서양을 왔다 갔다 하며 통화정책 공조를 했다. 그러나 버블 붕괴나 정책 실패에 따른 금융ㆍ경제위기에서 나타나는 양상들은 너무나 비슷하다.

2000년대 연준의 통화완화 정책으로 장기간 저금리가 유지되면서 전세계적 버블을 일으킨 것,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우리나라 등 신흥시장에서 갑자기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사실상 외환위기 상황이 발생한 것 등은 대공황의 각 단계와 비슷하다. 주식시장 붕괴 후 은행들의 과도한 브로커 론 취급이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자 글래스-스티걸 법을 제정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는 모습은, 지난달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발표한 은행 개혁 법안(볼커 룰)과 내용이나 배경이 유사하다.

한편 이 책은 4명의 중앙은행 총재들이 세계 경제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게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성향이 실제 통화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더라도, 그들은 당시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들을 수호하려 했던 역사 속의 인물인 만큼 그들에게 너무나 많은 책임을 지울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역사의 실패로부터 현재의 교훈을 얻는 것은 언제든 중요한 일이고, 세계적 금융위기와 경제 침체의 혼돈 속에 살아가는 오늘날 이 같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나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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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7 16:12 2010/03/0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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