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위기 후 10년 동안 사고 회로가 정지돼 있었던 것일까.
강만수 재정 장관의 행보를 보면 도대체 10년 동안 어디서 뭘 했길래 시장을 졸로 보나... 싶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말, 은행들이 기업들에게 환헤지 상품(선물환, 환변동보험, 통화옵션 등)을 팔았을 때 시작됐다. 당시 대부분의 경제연구소와 은행들이 환율이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고, 중소기업들에 환율을 900원대에서 고정시키는 환헤지 상품을 팔았다. (대기업은 직접 외환 시장에 참여해서 환헤징을 한다)
문제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지난달 갑자기 환율이 급등한 데 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여파로 자금경색이 심해지자 선진국이 아닌 곳에서 자금이 빠져나간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신임 강만수 장관이 이끄는 재정부가 악화된 경상수지 개선을 위해 환율을 인위적으로 높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 컸다.
기대감은 사실로 드러났다. 강만수 장관은 물가 불안을 우려하는 한은 총재와 대립각을 세우며 연일 환율 강경 발언을 쏟아 냈고, 결국 환율은 하루에 수십원씩 오르내리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지며 무려 1000원대까지 올라갔다.
그럼 900원대에 환헤지를 해 놓았던 기업은 어떻게 됐을까. 예상과 다르게 움직인 덕분에 손해를 봤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1, 12월 집계한 선물환 순매도 금액과 수출보험공사의 환변동보험 인수액을 합쳐 집계한 환 헤지 금액 규모는 모두 247.6억달러이며, 당시 평균 보장환율(11월 920.35원, 12월 934.84원)과 3월 평균환율인 982.51원을 적용해 환차익 상실분을 계산하면 무려 1조3,765억원이 나온다.
그나마 선물환이나 환변동보험에 가입했던 기업은 환율 상승으로 벌어들인 차익을 포기하는 선에서 그쳤지만 특정 범위에서 환율이 움직일 경우 괜찮지만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해를 입는 통화옵션 파생상품에 가입했던 기업들은 직접적인 손실을 봤다.
코스닥 상장기업인 제이브이엠은 통화옵션 거래로 지난달 말 현재 거래손실과 평가손실 등을 합쳐 지난해 당기순이익 규모와 같은 총 136억여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유럽과 거래하는 기업들은 유로화 강세에 원화 약세까지 겹쳐 더 큰 손실을 입고 있다. IDH는 지난달 12일 통화옵션거래에서 123억여원의 손실이 발생했으며, 대양금속도 지난달 3일 같은 이유로 111억여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그런데 환율 급등의 '주범'인 강만수는 오늘 "은행은 사기꾼 집단"이라며 중소기업들이 손해를 본 책임을 은행으로 돌렸다. 시장의 예상을 깨고 자기가 마음대로 환율을 주무른 다음에 은행이 중소기업에게 '사기를 쳐서' 환헤지 상품을 팔았다고 욕을 한 것이다. 한마디로 똥 싼 놈이 성내는 꼴이다.
오늘 통화한 모 은행 관계자는 "강만수 장관 자체가 시장의 흐름을 방해하는 시세조종세력이 됐다"면서 "강 장관 때문에 통화옵션 시장이 박살이 났는데, 책임은 안 지고 은행보고 사기꾼이라고 하다니 기가 막힌다"고 했다. 특히 "환투기세력들에게 관의 멘트는 지침이 되고 있다"면서 "지금이 독재정권 시절이냐"고 말했다.
환율을 올리면 무조건 경상수지가 좋아질 것이라는 강장관의 일차원적인 생각도 문제다.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생기는 것은 맞다. 하지만 지금 경상수지 적자의 원인은 수출이 부진해서가 아니라 유가를 비롯해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환율이 더 올라가면 석유 1리터 수입하는 데 드는 돈이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 나라에서 대부분의 원료는 수입한다. 수출 업체의 가격 경쟁력이 당장은 높아질지 몰라도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원가가 높아지면 채산성이 오히려 떨어지게 된다. 그뿐인가. 수입 가격 상승->생산자 물가 상승->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물가가 올라가면 직접적으로 생활이 어려워진다.
마음대로 시장을 주무르려는 강 장관에게 시장은 "고마 해라, 마이 뭇다"고 말하고 있다. 강 장관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지만.

